6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아들, 밥은 먹었어?" 기억은 흩어져도 사랑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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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체를 찾으러 세상의 넓은 광장과 깊은 숲을 헤매곤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식탁 위에, 매일 아침 어머니의 입술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기억을 하나둘 놓치고 계시는 어머니가 오늘도 변함없이 건네시는 물음입니다. "아들, 밥은 먹었어?"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반복되는 이 짧은 한 마디가 어머니의 하루를 지탱하는 전부인 듯합니다. 어머니는 이제 아들 이름조차 가끔 가물가물해 하십니다. 어제 나눈 대화도 금세 안개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만은 어머니의 영혼 깊은 곳에 화인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흐릿해져도 이 물음만큼은 또렷하게 빛납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이 물음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당신의 몸이 기억하는 유일한 생존의 언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물음 속에 어머니가 평생 감내해 온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가족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부엌을 지키던 시간, 밥상을 차리고 문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 수많은 세월이 그 한 문장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말은 짧지만 그 뒤에 숨은 시간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하루 중 가장 따뜻하고 거룩한 쉼표입니다. 기억을 건너온 사랑의 노래 어머니가 묻는다 밥은 먹었느냐고 어제도 묻고 오늘도 묻는다 다른 모든 말은 잊었는데 이 말만은 잊지 않았다 나는 대답한다 먹었다고, 잘 먹었다고 그 단순한 주고받음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사랑 받고 있음을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8) 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의 흔적 오늘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 따뜻한 안부를 건네받으셨나요? 혹시 받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사랑은 당신의 삶 어디엔가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기억은 흐릿해질 수 있어도, 몸에 배어든 사랑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손이, 때로는 ...

막걸리잔 하나에 그 사람의 목소리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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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 해안면, 벽지학교 관사 안에 막걸리 두 병과 김치 한 보시기를 올려놓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전라도 장성이 고향인 그 친구는 군 시절을 인제에서 보내고는, 여기가 살기 좋다며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이었습니다. 좁은 관사에 마주 앉으면 잔은 늘 두 개였고, 양은 쟁반 위 김치는 늘 한 접시뿐이었지만 막걸리는 줄어도 이야기는 줄지 않았습니다. 별 이야기, 역사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가 창밖 가로등이 꺼지고도 한참을 더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춘천에 있고, 그 친구는 인제 서화 시골학교에 근무 중입니다. 같은 강원도 안인데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거리가 그 사이에 들어선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자주 만나지 못한다고 그 저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채워졌던 잔은, 비워진 뒤에도 그 자리를 기억합니다. 막걸리잔 둘이 하나로 줄어도 그 저녁은 줄지 않는다 요즘 저는 혼자 잔을 채우는 날이 더 많습니다. 마주 앉을 사람이 없어도 잔을 두 개 꺼내놓는 버릇은 여태 고치지 못했습니다. 빈 잔에는 먼지가 앉고, 채워진 잔에서는 김이 살짝 오르다가 식어갑니다. 그 친구는 지금도 시골학교 관사에서, 누군가와 또 다른 막걸리잔을 채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벽지에서 벽지로 옮겨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이 우리 같은 처지에는 드물지 않습니다. 발령장 한 장이 사람을 이쪽 산골에서 저쪽 산골로 옮겨놓을 뿐, 함께 나눈 마음까지 옮겨놓지는 못합니다. 해안면 그 좁은 관사에서 별을 보던 그 밤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잔 속에 가라앉은 막걸리처럼, 말없이 그대로 고여 있을 뿐입니다. 가끔 비슷한 시각, 비슷한 자리에 앉으면 그날의 잔 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막걸리잔 둘 해안면 관사에 막걸리 두 잔 별을 안주 삼아 밤이 깊어갔다 지금은 잔 하나만 채워도 그 사람 목소리가 잔 속에 차오른다 만나지 못해도 잔은 그 자리에 비워진 채로 가득 차 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

아내의 고단함 위로 흐르는 그분의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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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아내의 어깨 위로 긴 그림자가 내려앉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대신 옮겨주고, 불편한 몸의 아이를 부축하느라 아내의 손은 이미 굳어 있습니다. 시나브로 아내의 손가락이 먼저 늙어갑니다. 퇴근 후면 딸이 마련해 준 손가락을 묵묵히 파라핀 베스 안으로 집어 넣습니다. 지식으로 세상을 정의하던 나의 젊은 날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쌓았던 논리는 아내의 굳은 마디 앞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확신에 찬 조언들은 아내의 고단함 앞에 차가운 쇳덩이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안경을 벗습니다. 굽어가는 아내의 등 뒤에서 멈춰 섭니다. 굽은 등 뒤의 그림자 아내의 굳은 손가락 위로 파라핀의 온기가 덮입니다 내가 가진 정교한 이론들은 그저 차가운 덩이 같아서 당신의 아픈 마디마디를 찌르고만 있었습니다 그제야 잘 닦아놓은 안경을 벗습니다 사랑은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앓는 것임을 아무 말 없이 굽어지는 등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낮은 곳으로 스미는 숨결 해야 할 말들은 저녁 노을에 흩어집니다. 파라핀의 온기를 손끝에 옮겨 담고, 그저 곁에 머뭅니다. 이는 셈을 하지 않는 일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온 아내의 노고가 고스란히 나의 아픔이 되는 자리, 그곳에 이미 그분의 따스한 손길이 와 있습니다. 내가 닦아놓은 오만한 길보다, 이 좁은 거실에서 아내의 가쁜 호흡에 내 숨을 맞추는 이 시간이 그분의 깊은 위로와 닿아 있습니다. 굳어버린 마디를 어루만지는 나의 서툰 손길마다 그분의 자비가 번져 나갑니다. 함께 걷는 마지막 걸음까지 오늘이 어제보다 더 고단할지라도, 그림자가 되어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림자는 말을 섞지 않고 그저 발치에 머뭅니다. 사랑은 굽은 등 뒤에서 조용히 걷는 일입니다. 당신이 딛는 발걸음마다 발을 포개겠습니다. 고요 속에서 맞잡은 두 손의 온기, 그 안에서 흐르는 영원한 평안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순간, 우리 사이로 그분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사랑은 오래 참...

찻잔 온기 품은 인사동 귀천, 다시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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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좁은 골목에 낡은 찻집이 있습니다. 이름은 '귀천', 시인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지키던 곳입니다. 천상병은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시를 썼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이 골목을 매일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고(故)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귀천 1호점'은 목 여사 별세 후 2010년에 정리되었으나, 이후 고인의 조카인 목영선 씨가 운영하던 '귀천 2호점'이 그 정신과 명맥을 이어받아 지금도 인사동(종로구 관훈동)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년이 지나 다시 그 골목 앞에 섰습니다. 그땐 몰랐던 골목이 이제는 낯익습니다. 문 손잡이는 바뀌었지만, 찻잔을 쥐면 손이 따뜻해지는 건 그대로였습니다. 요즘은 눈이 침침해서 글씨를 보려면 눈을 가늘게 떠야 합니다. 무릎도 예전 같지 않아 문턱 하나 넘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잠깐은 시간이 멈춥니다. 따뜻한 것 하나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 온기 속에서 잊고 지낸 골목 냄새가 다시 납니다. 그때는 몰랐던 게 있습니다. 골목을 무심히 지나던 제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저를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심했던 그 시절도, 사실은 누군가의 눈길 안에 있었습니다. 그 골목을 다시 걷는 것만으로,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다리가 놓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마주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것도 한 가지 만남입니다. 찻잔의 온기 골목 끝 낡은 문 앞 소년은 한 번도 안 멈췄다 시험지 무게만 메고 찻집 불빛을 그냥 지나쳤다 이십 년 뒤 같은 자리 손끝이 떨리며 문을 연다 찻잔 온기를 만지면 지나간 무심함도 따뜻해진다 빈 잔에서 김이 오르고 나는 처음으로 골목 소리를 듣는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121:8) 찻잔과 함께하는 쉼표 무릎이 전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몸은 변해도, 마음이 머물던 자리는 변하지 않습니...

20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름 없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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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시내의 어느 사우나,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의 긴장을 풀어줄 무렵, 낯선 청년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맑은 눈빛을 가진 청년.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데, 도무지 그 이름 석 자가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떠오르질 않습니다. "아, 내가 너를 어떻게 불렀지?" 당혹스러운 마음을 담아 되묻는 나의 목소리가 온탕의 습기에 젖어 낮게 깔립니다. 2학년 송화초교의 개구쟁이 청년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20년 전, 춘천 송화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 반이었던 아이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20년 전 교실의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온탕의 수증기 사이로 피어오릅니다. 그 아이는 말끝마다 "헐"이라는 꼬릿말을 더해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헐"이란 여우꼬리를 달게 되었습니다. 작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떠들던 아이들, 운동장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뛰놀던 그 맑은 얼굴들. 그 소란스럽고도 눈부셨던 시간의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그 아이의 얼굴 위로 2학년 시절의 풋풋한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이름 없는 기도의 자리 주님, 저는 세월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겠노라 다짐했던 그 시절의 마음은,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파도에 씻겨 내려갔나 봅니다. 청년의 이름을 부르지 못해 당황하던 그 순간, 저는 제 마음이 얼마나 무뎌졌는지 깊이 깨닫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이름을 즉각 부를 수 없으나, 20년 전 그 아이를 바라보며 품었던 교사로서의 순수한 사랑만큼은 오늘 이 온탕의 온도처럼 여전히 뜨겁게 남아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이름 대신 마음을 부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름을 부르고, 또 잊히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뻐드렁니 가리던 입은 열렸지만 웃음은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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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이를 닦다가, 위쪽 앞니 자리가 텅 빈 걸 다시 봅니다.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한번 쓸어보았습니다. 입을 다물지 않아도, 더는 가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앞니가 뻐드렁니였습니다. 웃으면 그게 먼저 보일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살았습니다. 동무들 사이에서도 말없이 듣기만 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없냐, 핀잔을 들은 날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저 입을 벌리는 일이 두려웠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무뚝뚝함으로 읽었습니다. 사진 찍을 때도 입을 다물고 웃었습니다. 졸업 사진 속 제 얼굴은 늘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 시절 다물었던 입은, 부끄러움을 가리려던 입이었습니다. 지금 그 자리가 비어 있다고 해서, 그 시절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가리던 것이 사라진 자리에 웃음은 그대로 오지 않는다 이제는 그 앞니마저 빠지고 없습니다. 입을 벌려도 가릴 것이 없으니, 손으로 가릴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웃을 일이 드뭅니다. 가리던 것이 사라지면 웃음도 절로 따라올 줄 알았는데, 입은 열렸어도 웃음은 다른 자리에서 천천히 옵니다. 어머니 곁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웃을 틈보다 챙길 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가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픽 웃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이 전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빠진 앞니 가리던 이가 빠지고 나니 입은 열렸는데 웃음은 아직이다 말 없던 시절엔 이 하나가 부끄러웠다 했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었다 비어 있는 자리로 숨이 드나든다 오늘 그 자리로 작은 웃음 하나 들어올지 모른다 여호와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그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오늘 입가에 머무는 시간 입안이 헐거나 마를 때는 물 한 모금을 천천히 머금어 보세요. 빈자리가 시리다면 따뜻한 쪽으로 음식을 옮겨 씹으세요. 말을 오래 참아온 턱은 의외로 굳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입을 작게 벌렸다 다물기를 몇 번 반복해 보세요...

좁은 방에서 길어 올린 당신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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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학원가, 박문각과 공단기 빌딩의 불빛이 하나둘 꺼질 무렵이면 사육신공원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유독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0.5평 남짓한 고시원, 창문조차 없는 방에서 7년을 보낸 당신의 등은 이제 굽은 나무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겠지요. 끼니마다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메우며 노량진역의 인파 속을 헤맬 때, 당신은 늘 외로운 섬처럼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그 좁은 방 벽지에 배어든 당신의 땀방울과 눈물은 결코 헛된 얼룩이 아닙니다. 당신이 견뎌온 그 시간은 이미 당신이라는 사람을 누구보다 귀하게 빚어놓았습니다. 노량진의 낮은 묵묵하고 밤은 뜨겁다 노량진 고시촌의 창문 없는 방은 수많은 이들이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가두고 견뎌내는 치열한 연구실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없기에, 오히려 당신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하지만 끈질긴 불빛이 더 선명하게 타오를 수 있는 공간이지요. 7년의 시간 동안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채워온 끼니들은 단순한 허기를 넘어, 당신이라는 사람의 기초를 다지는 단단한 벽돌이 되어 미래를 분명하게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고시촌의 좁은 복도에 울리는 옆방의 기침 소리와 타자 소리조차도, 지금 이 순간 같은 꿈을 꾸며 견디고 있는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임을 기억하세요. 새벽을 기다리는 방 낡은 고시원 복도 끝방 옆방의 기침 소리마저 숨죽여 듣던 밤 창문 없는 방 좁은 벽지 위로 7년이 곰팡이꽃처럼 피어납니다 학원 건물 불빛 아래 홀로 앉아 컵라면 국물로 얼룩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매일 조금씩 단단한 바위가 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눈빛은 맑게 깨어나니 이제 닫힌 문을 밀어내고 새벽을 틔우는 그 숨결로 당당히 일어섭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하여 주신다. (시 34:18)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7년이라는 시간은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일과 같습니다. 학원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거워진 종아리, 라면으로 때운 끼니 때문에 자주 속이 쓰리고 머리가 멍해지기도 하겠...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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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그치고 난 늦은 오후, 홍천강 휴게소에 차를 세웠습니다. 화장실 벽돌 벽에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금빛, 흰빛, 은빛, 빛깔은 다 달랐지만 머리는 한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굳어버린 저 몸짓이 꼭 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하고서야 알았습니다. 혈압약을 받아 들고 나오는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요. 혈당 숫자 하나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날도 있습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일도 늘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거기 있습니다. 출근하던 시절엔 몰랐던 통증들이 이제야 하나씩 이름을 얻습니다. 몸은 자꾸 낮아지는데 마음 둘 곳은 찾기 어려운 그런 날들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같은 말을 자꾸 묻습니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다시 묻고, 약 먹은 것도 자주 잊으십니다. 대학가 원룸, 좁은 방 안에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옛 동네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저 옆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도 저 물고기들처럼, 빛깔이 달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따로 붙어 있어도 같은 벽 위에서, 같은 물길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른 물길 벽돌 벽에 물고기 세 마리 저마다 다른 빛깔로 붙어 있다 금빛 하나는 높은 자리에서 헤엄치고 흰빛 하나는 낮은 자리에서 쉬고 은빛 하나는 가장 멀리서 따라간다 물 한 방울 없는 벽 위에서 세 마리는 같은 쪽을 바라본다 마른 지느러미에도 결은 남아 있다 어머니 곁에도 물고기 하나 빛깔을 잃어가는 채로 물 없이도 헤엄치는 법을 배운다 물고기를 가만히 보다가, 오래된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시 23:2)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오늘 당신의 무릎이, 혹은 손끝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 느낌을 굳이 숨...

8년째 비워 둔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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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비행기 한 대가 흰 줄을 그으며 멀어지는 오후입니다. 그 소리에 당신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8년 전, 아들이 떠나던 그날도 이런 비행기 소리가 하늘 어딘가에 있었을 거라고, 당신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날 당신은 공항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막일을 하던 친구가 먼저 데려다주었고, 당신은 집에서 그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 뒤, 아들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옷가지가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상자를 열던 손이 한동안 멈춰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몸이 아플 때면 그 상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아픈 곳을 손으로 짚을 때마다, 곁에서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직접 배웅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건 당신만이 아닐 것입니다.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딘 아들도, 그 아침을 가끔 떠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매일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의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 길을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시편 121:8, 새번역) 빈 상자를 펴 보던 시간 창밖으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손에 든 일을 놓는다 그 소리를 따라 하늘을 본다 8년 전 그날, 집에 있었다 며칠 뒤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테이프를 뜯는 손이 멈췄다 옷가지마다 아들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곁을 지키는 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도 아픈 곳을 짚을 때면 그 상자가 먼저 떠오른다 비행기 소리가 다시 멀어진다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배웅조차 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때가 있을 줄 압니다. 그저 그런 날이었다고, 가만히 두어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아들에게 짧은 안부 한마디라도 보내 보세요. 그날 배웅하지 못한 마음도, 지금이라도 한마디 말 속에 담아 보낼 수 있습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곁에 있다는 걸, 아들...

목련꽃 아래서 시작된 낯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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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우는 목련꽃이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인데, 올해의 목련은 유독 서늘하게 빛납니다. 그 찬란한 꽃잎들이 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119 구급차를 타고 예고 없는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익숙한 안방을 떠나 차가운 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평생 마주해야 할 가장 낯설고 먼 길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사이렌 소리에 묻혀 사라질 때, 나는 비로소 그 봄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시편 91:4) 불안한 마음 한편으로, 이 낯선 길 위에서도 우리를 덮어주시는 분이 계심을 믿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를 감싸 안은 것은 구급차의 차가운 철제가 아니라, 당신과 어머니를 지켜주시는 그분의 따뜻한 날개임을 잊지 마세요. 하얀 목련이 지는 아침 목련꽃 벙글어지는 아침 어머니는 낯선 바퀴 위에서 꽃잎 같은 눈꺼풀을 닫고 길을 떠난다 아파트 담장을 넘던 순백의 꽃들이 구급차 뒷유리에 부딪혀 파르르 몸을 떨며 흩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손끝에 닿아 있던 따뜻한 밥상과 오후의 햇살은 갈 곳을 잃고 응급실 문턱에서 서성인다 굽은 등 뒤로 짊어지고 오신 한평생의 봄날이 속절없이 차가운 기계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는 그저 창백해진 당신의 손을 잡고 이 낯선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차마 묻지 못한 채 목련 지는 소리만 가만히 귀로 듣는다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응급실의 공기는 낯설고 차갑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잡고 있는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구명줄입니다. 어머니가 삶의 가장 낯선 정거장에 멈춰 서셨어도, 당신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어머니는 고통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겪어내고 있는 이 아픔은,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온 가장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