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고단함 위로 흐르는 그분의 강물
시나브로 아내의 손가락이 먼저 늙어갑니다. 퇴근 후면 딸이 마련해 준 손가락을 묵묵히 파라핀 베스 안으로 집어 넣습니다.
지식으로 세상을 정의하던 나의 젊은 날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쌓았던 논리는 아내의 굳은 마디 앞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확신에 찬 조언들은 아내의 고단함 앞에 차가운 쇳덩이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안경을 벗습니다. 굽어가는 아내의 등 뒤에서 멈춰 섭니다.
굽은 등 뒤의 그림자
아내의 굳은 손가락 위로
파라핀의 온기가 덮입니다
내가 가진 정교한 이론들은
그저 차가운 덩이 같아서
당신의 아픈 마디마디를
찌르고만 있었습니다
그제야
잘 닦아놓은 안경을 벗습니다
사랑은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앓는 것임을
아무 말 없이 굽어지는
등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낮은 곳으로 스미는 숨결
해야 할 말들은 저녁 노을에 흩어집니다.
파라핀의 온기를 손끝에 옮겨 담고, 그저 곁에 머뭅니다. 이는 셈을 하지 않는 일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온 아내의 노고가 고스란히 나의 아픔이 되는 자리, 그곳에 이미 그분의 따스한 손길이 와 있습니다.
내가 닦아놓은 오만한 길보다, 이 좁은 거실에서 아내의 가쁜 호흡에 내 숨을 맞추는 이 시간이 그분의 깊은 위로와 닿아 있습니다. 굳어버린 마디를 어루만지는 나의 서툰 손길마다 그분의 자비가 번져 나갑니다.
함께 걷는 마지막 걸음까지
오늘이 어제보다 더 고단할지라도, 그림자가 되어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림자는 말을 섞지 않고 그저 발치에 머뭅니다. 사랑은 굽은 등 뒤에서 조용히 걷는 일입니다. 당신이 딛는 발걸음마다 발을 포개겠습니다.
고요 속에서 맞잡은 두 손의 온기, 그 안에서 흐르는 영원한 평안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는 순간, 우리 사이로 그분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