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날에
장맛비 그치고 난 늦은 오후, 홍천강 휴게소에 차를 세웠습니다. 화장실 벽돌 벽에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금빛, 흰빛, 은빛, 빛깔은 다 달랐지만 머리는 한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굳어버린 저 몸짓이 꼭 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하고서야 알았습니다. 혈압약을 받아 들고 나오는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요. 혈당 숫자 하나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날도 있습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일도 늘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거기 있습니다. 출근하던 시절엔 몰랐던 통증들이 이제야 하나씩 이름을 얻습니다. 몸은 자꾸 낮아지는데 마음 둘 곳은 찾기 어려운 그런 날들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같은 말을 자꾸 묻습니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다시 묻고, 약 먹은 것도 자주 잊으십니다. 대학가 원룸, 좁은 방 안에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옛 동네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저 옆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도 저 물고기들처럼, 빛깔이 달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따로 붙어 있어도 같은 벽 위에서, 같은 물길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른 물길
벽돌 벽에 물고기 세 마리
저마다 다른 빛깔로 붙어 있다
금빛 하나는 높은 자리에서 헤엄치고
흰빛 하나는 낮은 자리에서 쉬고
은빛 하나는 가장 멀리서 따라간다
물 한 방울 없는 벽 위에서
세 마리는 같은 쪽을 바라본다
마른 지느러미에도 결은 남아 있다
어머니 곁에도 물고기 하나
빛깔을 잃어가는 채로
물 없이도 헤엄치는 법을 배운다
물고기를 가만히 보다가, 오래된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시 23:2)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오늘 당신의 무릎이, 혹은 손끝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 느낌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몸이 낮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흔적입니다. 약을 챙기는 손이 더뎌져도, 그 손은 여전히 부지런한 손입니다. 오늘 하루 더 걸은 걸음, 오늘 하루 더 버틴 식사,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몸은 제 몫을 다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당신 자신을 자꾸 뒤로 미뤄두고 있다면, 잠깐 멈춰서 숨을 쉬어도 됩니다. 당신이 챙긴 끼니, 당신이 건넨 약 한 알, 그 작은 손길들이 이미 충분히 따뜻한 동행입니다.
당신께 닿고 싶은 말
곁에 있는 사람이 점점 낯설어지는 날에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다시 들어도 됩니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함께 있어주는 일 자체가 더 중요한 날도 있습니다. 옛 동네 이름을 자꾸 부르는 그 목소리도, 당신 곁에 있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쉴 만한 물 가로 이끄시는 분은 지금도 당신과 어머니 곁에 나란히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