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못 들어가고, 유리창 너머로 지켜본 재활 운동

재활병원 복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걷는 뒷모습
엄마의 걸음마

재활병원은 평일 면회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대신 정해진 재활 운동 시간에 맞춰 가면, 복도 유리창 너머로 어머니가 걷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렀습니다. 면회 명부에 이름을 적을 필요도 없이, 복도 유리창 앞에 그냥 서면 됩니다.

유리창 안쪽은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치료사가 어머니 팔을 붙잡고, 한 걸음씩 떼는 연습을 시킵니다. 발이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다시 뒤로 밀리고, 그러다 또 한 걸음. 창 이쪽에서는 그저 서서 보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유리 한 장이 그렇게 먼 거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24시간 간병인이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어서, 평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유리창 너머로 직접 보는 것과, 전화로 안부만 듣는 것은 다릅니다. 걷는 뒷모습 하나가, 열 마디 안부보다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지난주에는 아내와 함께 강원대병원 외래진료에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접수와 대기 순서를 챙기는 동안,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오늘처럼 유리창을 떠올렸습니다. 나눠 감당하는 몫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유리창 너머의 걸음마

평일엔 문이 닫혀 있다
정해진 시간에만 유리창 앞에 선다
치료사 손을 잡고 한 걸음
어머니 발이 앞으로 나간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는 일만 할 수 있다
발이 흔들리다 다시 바닥을 딛는다
나는 유리에 손을 대본다
차갑다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다시 선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 27:14)

면회 안 되는 평일, 그래도 버티는 법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 유리창 너머로 본 걸음 하나가, 다음 면회 날까지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24시간 곁을 지켜주는 손길이 있다면,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일요일 오후, 겨우 마주 앉는 두 시간

예배가 끝나면 서둘러 병원으로 향합니다. 오후 한 시 반에서 세 시, 그 두 시간이 이번 주 유일하게 마주 앉는 시간입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일주일 치 이야기를 다 담으려 하지 않습니다. 손을 잡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엄마, 점심은 맛나게 드셨지요?"
"응, 너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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