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우울증, 시든 페튜니아도 뿌리는 살아있습니다

한낮 땡볕에 꽃잎이 늘어진 분홍 페튜니아 화분

창가 화분의 페튜니아가 한낮이면 꽃잎을 축 늘어뜨립니다. 어머니는 그걸 보며 "이거 죽은 거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보았습니다. 빛바랜 분홍 꽃잎, 고개 숙인 줄기, 한낮 땡볕 아래 늘어진 모습. 바람이 불어도 일어서지 못하고, 그저 더 깊이 늘어질 뿐인 화분이었습니다.

요즘 낮이면 소파에 한참을 늘어져 있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일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씻는 일도, 밥을 짓는 일도, 더위 핑계로 자꾸 미뤄집니다. 만사가 귀찮고 입맛도 예전 같지 않은 날이 길어지면, 사람도 저 시든 페튜니아처럼 보이는가 봅니다. 누가 봐도 늘어진 모습으로,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로.

페튜니아는 한낮에 스스로 살아나지 않는다

페튜니아는 한낮에 물을 줘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뜨거운 흙에 물을 부으면 뿌리가 오히려 데어, 저녁 그늘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꽃이 게을러서 늘어진 게 아닙니다. 뿌리는 흙 속에서 더위를 견디며 저녁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꽃잎이 처져 있는 동안에도, 뿌리 끝에서는 늘 무언가가 진행 중입니다.

노인 우울증도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의욕이 줄고 몸이 자주 쑤시며, 기억까지 흐릿해져 치매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기력한 한낮이 게으름은 아닙니다. 말이 줄어들고 웃음이 늦게 나오는 시간도, 고장 난 것은 아닙니다. 안 보이는 자리에서, 무언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속도가, 우리가 바라는 속도보다 훨씬 느릴 뿐입니다. 조급해할 일은 아닙니다.

페튜니아

시든 페튜니아 위로
땡볕이 내린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흙 밑에서 무얼 하는지

꽃잎은 묻지 않는다
언제 그늘이 오느냐고

다만 견딘다
무게를 그대로 진 채

꺾이지 않을 만큼만
늘어진다

저녁은 꽃잎이 부른 게 아니라
뿌리가 보낸 것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 42:5)

뿌리가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낮에도 소파에 한참 늘어져 있었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일어나는 일이 늦었다고 해서, 뿌리가 멈춘 건 아닙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창문을 열어 잠깐 바람을 들이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무릎을 펴고 어깨를 가볍게 돌려 보세요. 발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됩니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아주 조금은 따라옵니다. 오늘 하루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늘은 꽃잎 끝에서 옵니다

곁에 사람이 있다면,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됩니다. 옆에 앉아 같은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 꽃잎 하나가 덜 늘어집니다. 은퇴와 상실 뒤에 찾아오는 외로움은 노년기 우울증의 흔한 자리라고 합니다. 혼자 견디는 한낮보다, 누군가 곁에 있는 한낮이 조금은 짧게 느껴집니다. 그 짧아진 만큼이, 뿌리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요즘도 그 페튜니아를 보며 죽은 화분 같다 하십니다. 그런데 어제저녁, 물을 준 뒤 꽃잎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드는 걸 보았습니다. 아직 다 펴지진 않았습니다. 활짝 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거기 무언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마음이 시든 페튜니아 같다 해도, 뿌리는 여전히 거기 있습니다. 그늘은 늘 가장 늦은 저녁에, 그러나 분명히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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