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억은 오늘도 잠깐 외출 중입니다

태그: 접힌 부채 위에 인쇄된 기억검진 안내 문구

장롱 서랍에서 낡은 부채 하나를 꺼냈습니다. 몇 해 전 보건소에서 받아 온 것인데, 펼치니 "기억검진"을 권하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는 병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아내와 나는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오늘 날짜를 묻습니다.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기억이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어떤 날은 정확히 맞히시고, 어떤 날은 한참을 헤매다 엉뚱한 요일을 대십니다. 그 사이, 기억은 잠깐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처럼 오갑니다. 문 앞까지 나갔다가 마음을 바꿔 돌아서는 것처럼요.

부채에 적힌 글 중에, 오래 망설일수록 늦게 발견된다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직 몸이 성한 지금, 나도 한 해에 한 번씩은 검진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늦게야 배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입니다.

부채 속 기억검진

서랍에서 낡은 부채를 꺼낸다
접힌 살 사이로 인쇄된 글자가 보인다
오늘 며칠이냐고 어머니께 묻는다
대답이 조금 늦게 돌아온다
부채를 펴서 얼굴에 바람을 보낸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글자가 다시 보인다
서서히 나타나는 병이라 적혀 있다
나는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한다
다음 정기검진 날짜를 달력에 적는다
접힌 부채를 서랍에 다시 넣는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정기검진을 미루지 않아야 하는 이유

몸이 아직 괜찮다고 느껴져도, 검진은 미리 받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서서히 오는 변화는 본인도 가족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오래 망설인 만큼 늦게 발견된다는 말을, 어머니를 보며 뒤늦게 배웠습니다. 올해는 저도 검진 예약부터 해두려 합니다.

잊어도 잊히지 않는 사이

날짜를 자꾸 물어보는 일이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묻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오늘 기억이 잠깐 나가 있어도, 내일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곁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외출은 아주 멀리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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