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시편23인 게시물 표시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날에

이미지
장맛비 그치고 난 늦은 오후, 홍천강 휴게소에 차를 세웠습니다. 화장실 벽돌 벽에 작은 물고기 세 마리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금빛, 흰빛, 은빛, 빛깔은 다 달랐지만 머리는 한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굳어버린 저 몸짓이 꼭 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하고서야 알았습니다. 혈압약을 받아 들고 나오는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요. 혈당 숫자 하나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날도 있습니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일도 늘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거기 있습니다. 출근하던 시절엔 몰랐던 통증들이 이제야 하나씩 이름을 얻습니다. 몸은 자꾸 낮아지는데 마음 둘 곳은 찾기 어려운 그런 날들입니다. 어머니는 요즘 같은 말을 자꾸 묻습니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다시 묻고, 약 먹은 것도 자주 잊으십니다. 대학가 원룸, 좁은 방 안에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창밖을 보며 옛 동네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저 옆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도 저 물고기들처럼, 빛깔이 달라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따로 붙어 있어도 같은 벽 위에서, 같은 물길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른 물길 벽돌 벽에 물고기 세 마리 저마다 다른 빛깔로 붙어 있다 금빛 하나는 높은 자리에서 헤엄치고 흰빛 하나는 낮은 자리에서 쉬고 은빛 하나는 가장 멀리서 따라간다 물 한 방울 없는 벽 위에서 세 마리는 같은 쪽을 바라본다 마른 지느러미에도 결은 남아 있다 어머니 곁에도 물고기 하나 빛깔을 잃어가는 채로 물 없이도 헤엄치는 법을 배운다 물고기를 가만히 보다가, 오래된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시 23:2)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오늘 당신의 무릎이, 혹은 손끝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 느낌을 굳이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