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보다 먼저 와 있던 보호대
이튿날 춘천 KBS 방송국 맞은편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발가락을 붕대로 감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그제야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졌습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 풍경이 어제와 달라져 있었습니다. 침대 모서리, 식탁 다리, 옷장 손잡이마다 푹신한 보호대가 하나씩 붙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별말 없이 부엌에서 저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보호대를 붙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말하지 않고 다녀간 손이 있다면, 그 손끝에는 이미 둥근 보호대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괜찮다는 진단보다, 모서리마다 남은 그 손길이 먼저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말없이 다녀간 손이 모서리마다 남아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언제 보호대를 붙였는지 물었습니다. 아내는 그저 출근하기 전 잠깐이었다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부엌 식탁 다리에도, 욱신거리던 새끼발가락이 부딪쳤던 그 자리보다 먼저, 둥근 보호대 하나가 붙어 있었습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표면이 매끄럽고 가벼웠습니다.
옷장 손잡이 모서리에도, 화장실 문틀 끝에도 같은 보호대가 붙어 있었습니다. 집 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손이 다녀간 자리가 그렇게 많았습니다.
어머니도 그 보호대를 발견하고는, 식탁 다리를 짚으며 한참을 만지셨습니다. 누가 이런 걸 붙였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말은 아끼고 손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날 저녁 늦게서야 마음에 닿았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아 발끝을 만지는 동안,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보호대
모서리마다
둥근 살이 돋았다
말은 한마디도
얹지 않았는데
손끝이 먼저
다녀간 자리마다
부드러움이 남았다
부딪혀도
이제는
소리가 작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에게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시 91:11)
말하지 않아도 먼저 다녀간 손길에 기대어도 됩니다
오늘 누군가 말없이 다녀간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를 가만히 만져보세요. 표시가 나지 않아도, 분명히 다녀간 손이 있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듣기 전에 이미 보호받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굳이 캐묻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부딪힐 자리가 있다면, 누군가의 손이 먼저 다녀갔을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 보호대를 오늘 처음 만져보아도, 둥근 자리는 어제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모서리마다 다녀간 손이 오늘도 곁에 있습니다
병원에서 들은 괜찮다는 말은 하루 만에 잊혔지만, 모서리에 남은 둥근 보호대는 매일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보호대 하나가 그날의 통증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다녀가고, 말하지 않아도 손을 씁니다. 그 손길은 다친 자리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다치지 않은 자리까지 미리 살피고 갑니다.
병원 진단서에는 적히지 않는 보호가, 집 안 곳곳에 둥글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 보호는 말로 전해지지 않고, 손끝에서 손끝으로만 전해집니다.
오늘도 모서리마다 다녀간 손이 곁에 있다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부딪혀도 그 손길 덕분에, 소리는 조금씩 작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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