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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비워 둔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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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비행기 한 대가 흰 줄을 그으며 멀어지는 오후입니다. 그 소리에 당신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8년 전, 아들이 떠나던 그날도 이런 비행기 소리가 하늘 어딘가에 있었을 거라고, 당신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날 당신은 공항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막일을 하던 친구가 먼저 데려다주었고, 당신은 집에서 그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 뒤, 아들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옷가지가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상자를 열던 손이 한동안 멈춰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몸이 아플 때면 그 상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아픈 곳을 손으로 짚을 때마다, 곁에서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직접 배웅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건 당신만이 아닐 것입니다. 낯선 땅에 첫발을 디딘 아들도, 그 아침을 가끔 떠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매일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의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 길을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시편 121:8, 새번역) 빈 상자를 펴 보던 시간 창밖으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손에 든 일을 놓는다 그 소리를 따라 하늘을 본다 8년 전 그날, 집에 있었다 며칠 뒤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테이프를 뜯는 손이 멈췄다 옷가지마다 아들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곁을 지키는 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도 아픈 곳을 짚을 때면 그 상자가 먼저 떠오른다 비행기 소리가 다시 멀어진다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배웅조차 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때가 있을 줄 압니다. 그저 그런 날이었다고, 가만히 두어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아들에게 짧은 안부 한마디라도 보내 보세요. 그날 배웅하지 못한 마음도, 지금이라도 한마디 말 속에 담아 보낼 수 있습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곁에 있다는 걸, 아들...

목련꽃 아래서 시작된 낯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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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우는 목련꽃이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인데, 올해의 목련은 유독 서늘하게 빛납니다. 그 찬란한 꽃잎들이 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119 구급차를 타고 예고 없는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익숙한 안방을 떠나 차가운 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평생 마주해야 할 가장 낯설고 먼 길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사이렌 소리에 묻혀 사라질 때, 나는 비로소 그 봄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시편 91:4) 불안한 마음 한편으로, 이 낯선 길 위에서도 우리를 덮어주시는 분이 계심을 믿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를 감싸 안은 것은 구급차의 차가운 철제가 아니라, 당신과 어머니를 지켜주시는 그분의 따뜻한 날개임을 잊지 마세요. 하얀 목련이 지는 아침 목련꽃 벙글어지는 아침 어머니는 낯선 바퀴 위에서 꽃잎 같은 눈꺼풀을 닫고 길을 떠난다 아파트 담장을 넘던 순백의 꽃들이 구급차 뒷유리에 부딪혀 파르르 몸을 떨며 흩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손끝에 닿아 있던 따뜻한 밥상과 오후의 햇살은 갈 곳을 잃고 응급실 문턱에서 서성인다 굽은 등 뒤로 짊어지고 오신 한평생의 봄날이 속절없이 차가운 기계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는 그저 창백해진 당신의 손을 잡고 이 낯선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차마 묻지 못한 채 목련 지는 소리만 가만히 귀로 듣는다 당신의 오늘과 함께하는 쉼표 응급실의 공기는 낯설고 차갑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잡고 있는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구명줄입니다. 어머니가 삶의 가장 낯선 정거장에 멈춰 서셨어도, 당신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어머니는 고통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겪어내고 있는 이 아픔은,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온 가장 깊은...